출근길, 간신히 신호를 통과해 기분 좋게 속도를 올리려는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한 대의 차.
제한속도 80km 도로에서 40~50으로 느릿느릿, 차선은 굳이 1차선.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, 내 하루의 온도도 같이 낮아지는 느낌이 든다.
우리는 흔히 “과속이 문제”라고 말하지만, 조금만 들여다보면 흐름을 망가뜨리는 저속 운행 차량 역시 도로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. 흥미로운 건, 이들이 대부분 이렇게 믿는다는 점이다.
“나는 천천히 가니까 안전해.”
하지만 정말 그럴까?
저속 운행 차량이 과속을 부른다는 역설
도로 위에서 위험을 만드는 건 항상 ‘빠른 차’일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다.
그런데 실제로 운전하다 보면, 과속·급차선 변경·위험한 추월을 유발하는 쪽은 오히려 저속 운전 차량일 때가 많다.
앞에 저속차량이 한 대 있으면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?
- 바쁜 운전자는 조급함이 쌓이고
- 차간 거리는 점점 좁아지며
- 눈은 앞차가 아니라 양옆의 빈 틈을 찾기 시작한다.
결국 누군가는 급차선 변경을 시도하고, 누군가는 맞은편 차가 오기 전에 빨리 추월하려고 순간 과속을 한다.
표면적으로는 저속 운행 차량이 “조용히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처럼” 보이지만, 그 뒤에서는 여러 대의 차량이 더 위험한 선택지로 떠밀리고 있는 셈이다.
“나는 천천히 가니까 괜찮아”라는 착각
과속이 분명 잘못된 행동인 건 맞다. 다만, 저속 운행 차량을 추월해 지나가다가 유심히 살펴보면 가끔씩 마주치는 장면이 하나 있다.
속도는 느린데, 시선은 전방이 아니라 손 안의 스마트폰 화면에 가 있는 운전자다.
“나는 천천히 가니까 괜찮다”는 생각 뒤에는,
속도만 낮추면 다른 건 조금 대충해도 된다는
편한 자기 합리화가 숨어 있다.
하지만 전방 주시를 놓친 순간, 저속이든 고속이든 똑같이 위험해진다.
게다가 그 느린 주행 뒤에서 이미 여러 대의 차가 조급함을 쌓고 있다는 점까지 더하면, 이 상황은 꽤 아이러니하다.
- 앞차는 “나만 조심하면 된다”는 마음으로 느리게 주행하고
- 뒤차는 답답함에 과속·급차선 변경을 고민한다
결국 도로 전체의 위험도는 올라가는데, 정작 당사자는 “나는 조심해서 가는 중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.
‘나만 안 다치면 돼’식 안전 의식
저속 운행 차량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부류는 아니다.
다만 실제 도로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.
- 1차선에 오래 머무르면서도 뒤에 차가 몰리는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
- 차선 변경을 할 때 깜빡이를 늦게 켜거나, 아예 켜지 않고 움직이는 경우
- 뒤에 차가 길게 줄지어 있는데도 “내가 흐름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?”를 한 번 더 생각하지 않는 경우
이게 악의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,
“나는 중앙선만 넘지 않고, 신호만 안 어기고, 속도만 낮추면 괜찮아.”
하지만 이건 ‘나 혼자만의 안전’을 기준으로 삼는 이기적인 안전 의식에 가깝다.
도로에서의 진짜 안전은
“내가 편한 속도”가 아니라
“모두가 덜 위험한 상황”을 만드는 선택
에서 출발한다.
천천히 가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. 초보 운전자일 수도 있고,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, 차의 성능 문제일 수도 있다.
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.
문제는 그 느린 속도를 남에게 강요하면서도, 그로 인해 생기는 위험은 본인의 책임 밖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다.
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, ‘흐름을 읽는 능력’
운전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.
“운전을 잘한다는 건, 기술보다도 분위기를 잘 읽는 능력이 아닐까?”
- 차들이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
- 이 도로의 평균 리듬은 어느 정도인지
- 내가 그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
- 내 뒤에 쌓이는 차량들이 불안하거나 위험한 선택을 할 상황은 아닌지
이걸 감각적으로 캐치하는 순간, 운전 스타일이 달라진다.
- 내가 너무 느리게 가고 있다면 한 차선 양보를 하고
- 직진 차로에서 저속이라면 굳이 1차선을 고집하지 않고
- 추월이 어려운 도로라면 갓길이나 휴게 공간에서 잠시 비켜주는 선택도 할 수 있다.
이건 법조항이나 벌점의 문제가 아니라, 결국 매너와 배려에 관한 문제다.
도로 매너는 거창한 캠페인 문구가 아니라,
“내 선택이 다른 사람을 더 조급하게,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?”
를 한 번 더 떠올리는 습관에서 시작된다.

우리가 만들어 가는 도로 위의 일상
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중 하나가 도로 위다.
출퇴근길, 아이 등·하원, 주말 마트, 가족 나들이…
우리가 느끼는 피로감과 여유는 도로 위에서 이미 절반 이상 결정될 때도 있다.
앞에서 흐름을 끊는 차를 만났을 때 선택지는 대략 세 가지다.
- 화를 낸다.
– 클락션, 상향등, 바짝 붙이기. - 위험을 감수하고 앞지른다.
– 순간 과속, 급차선 변경, 무리한 추월. - 내가 먼저 ‘다른 흐름’을 선택한다.
– 안전한 구간에서 차로를 바꾸거나, 한 템포 늦춰 가는 쪽으로 마음을 조정한다.
현실에서는 1번·2번이 훨씬 쉽다.
하지만 우리가 매일 그렇게 선택할수록 도로 위 공기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,
결국 그 피로는 집에 도착해서도 식지 않은 채로 남는다.
저속 운행 차량도,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질문
- 나는 “천천히 가는 것 = 무조건 안전”이라고 단순하게 믿고 있지는 않은가?
-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의 시야와 선택지를 좁히고 있지는 않은가?
- 속도만 낮추면 모든 게 면책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?
- 도로 위에서의 ‘배려’는, 양보운전 캠페인 문구로만 알고 있지는 않은가?
저속 운행 차량은 단순히 느리게 가는 차를 넘어,
우리 사회의 안전 의식과 매너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른다.
“나만 안 다치면 돼”라는 좁은 안전을 넘어서
“모두가 덜 위험한 상황”을 같이 만드는 방향으로 시선을 조금만 옮겨본다면,
출근길의 체감 온도는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다.
오늘도 어딘가에서 저속으로 운행하는 차량을 마주하게 된다면,
한 번쯤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.
“지금 이 도로에서, 진짜 위험을 만드는 쪽은 누구일까?”
“나는 어떤 흐름을 선택하고 있는가?”

